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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을 맞이하여 단재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특강을 듣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을 폭넓은 지식의 장으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덧붙여 한 강사의 특강을 여러 번에 걸쳐 심도 깊게 듣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2~3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듣기엔 수박 겉핥기후추 통째로 삼키기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지 한 번 들어보긴 했지하는 정도의 위안은 오히려 특강의 의도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말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알고 있는데하는 말일 것이다. 제대로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 몇 번의 경험만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건 알고자 하는 욕구를 봉쇄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니 말이다.

다양한 배움의 장을 마련하자는 의도와 이벤트성에 그칠 수 있다는 문제점을 함께 고려하여 올 1학기에 마련된 강의가 바로 박철민 교수의 과학사 특강이다.

 

 

첫 만남, 그리고 방식

 

441430, 단재학교 단군방에서 과학사 특강이 시작되었다. 외부강사의 특강이 진행되는 만큼 분위기는 지금까지 단재학교의 분위기와는 달리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했다. ‘과연 강사님은 어떤 식으로 강의를 진행할까?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에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낄까?’라는 기대를 하며 강사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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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교수님이 특강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도 마음을 가다듬고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박철민 교수님의 첫 인상은 친근하여 옆집 형 같은 느낌이었다. 강의 진행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방식이 아닌, 학생들의 생각을 세 가지 카드(긍정카드, 중립카드, 부정카드)로 표시하게 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충분히 들은 후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걔 중에는 장난으로 카드를 드는 학생도 없진 않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진지하게 카드를 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고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하여 활기찬 분위기가 되도록 했다. 그와 같은 강의 분위기가 된 데엔 교수님의 역량도 있지만, 성숙해졌고 힘들더라도 참으며 들을 수 있는 단재학생들의 저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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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라기보단 포스트잇을 들어 의사를 표현하는 학생들. 파랑색은 긍정, 주황색은 중립, 분홍색은 부정을 나타낸다.  

 

 

과학 공부는 정말 필요할까?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교수님은 질문을 던졌다.

Q: 과학 공부는 필요한가?”

얼핏 생각해보면 왜 당연한 걸 묻지?’하는 생각이 들 법한 질문이다. 더욱이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던지는 것이라면, 뻔한 답을 유도하기 위한 발문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하지만 역시나 자기 생각이 분명한단재학생들이기에, 태반이 긍정카드를 들었으나 걔 중 몇몇은 부정카드와 중립카드를 들었다.

 

A: (긍정카드를 든 학생)

오승환: “과학으로 긍정적인 결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도 발생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송지민: “당연히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기에 꼭 과학 공부는 필요하다.”

하유빈: “과학을 조금 좋아하며 과학이 역사보다 좋기 때문에 필요하다.”

 

A: (중립카드를 든 경우)

김이향: “관심이 없었고 잘 몰랐다.”

임승빈: “조금의 호기심은 필요하나, 난해한 것엔 관심이 없다.”

 

A: (부정카드를 든 경우)

이건호: “물론 필요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필요치 않다. 실생활에 필요한 정도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유럽의 산업혁명 이후로 과학의 세기에 접어들었고, 현대문명의 기초가 과학을 통해 건설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는 있지만, 과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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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의 발명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그걸 공부라는 영역으로 좁혀 이야기하면 과학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만 필요하며 그 외의 사람에겐 필요하지 않다는 한정적 필요성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과학 공부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모순적인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답변 또한 어찌 보면 근대 학문이 지닌 문제점을 드러낸 말이라 할 수 있다. 전근대 시대의 학문이란 (문학)·(역사)·(철학)을 아우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였고 역사학자였다. 문장가로 이름 난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거중기擧重器라는 기구를 사용하여 수원화성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문화적인 풍토가 있어서 가능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유명 작가가 건물의 도면을 그리고 건설현장에 서서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격이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그 땐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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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대파된 수원화성이 유네스코에 들 수 있었던 데엔, 위와 같은 '화성성역의궤'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학문 풍토가 20세기 이후 서양의 학문으로 급격하게 대체되면서 전공이란 게 생겨났고 각 과목은 잘게 쪼개져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건호의 주장은 분과分課된 학문만 배우고 전공을 택하여 공부하는 근대학문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공부의 원의

 

어찌 보면 교수님의 과학 공부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학문을 좁은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현세대의 공부론을 재확인하고 문제제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제제기를 통해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이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제시해야 한다. 좁디좁은 공부론을 어떻게 확장시킬 것이며, 그걸 어떻게 학생들에게 의미부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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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의 핵심은 소통하려는 의지 속에 있다.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라도 들으려는 의지는 필요하다.

 

교수님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넌지시 알려주기보다 정공법으로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 바로 工夫공부라는 한자어를 풀어주며 이야기를 전개하였던 것이다.

(장인공)이란 한자는 손잡이가 달린 끌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우린 공부라는 한자를 쓸 때, 을 쓰는 것일까? 교수님은 이란 한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바로 의 윗 획은 하늘을, 아래 획은 땅을, 그 사이를 연결하는 획은 인간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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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공이란 한자엔 '천인합일'의 사상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 공작의 도구인 끌만을 의미하지 않고, 천지인天地人의 철학을 구현한 한자라는 것이다. ‘(무당무)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를 형상화한 것과 같은 원리라고 보는 것이다. 천지인 사상의 핵심은 자연의 법칙이 인간 내면의 법칙과 조응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건 곧 인간의 끊임없는 천지자연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공부의 이란 기실 알고 보면, 천지자연과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아비부)는 왜 쓰인 것일까? ‘라는 한자에 한 획을 첨가한 꼴이다. ‘사람이 양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기에, 머리 부분에 첨가한 한 획은 당연히 갓을 쓴 성인 남성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 세계를 일구며 가꾸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부의 란 미지未知의 세계를 지의 세계로 바꾸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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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비부는 세상과 나와의 관계 지음을 표현한 한자다. 미지의 세계로 나가려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 공부란?

 

이나 나 어느 것 할 것 없이, 앎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과 소통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그건 곧 학문에 대한 관점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공부는 남보다 선두에 서기 위한 수단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앎의 범주가 협소해지니 삶 또한 비루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에 반해 진정한 공부는 세상과의 합일을 추구하여 앎의 촉수가 내면의 그윽한 곳에 머물기보다 외부와 사물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강인한 자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타향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한 자이다.

미숙한 영혼의 소유자는 그 자신의 사랑을 세계 속 특정한 하나의 장소에 고정시킨다. 강인한 자는 그의 사랑을 모든 장소에 미치고자 한다. 완벽한 자는 그 자신의 장소를 없애버린다. -빅토르 위고,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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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듯, 또렷한 듯 반짝이는 눈을 지닌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의 작가로 유명한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가 공부론을 피력한 공부란 책에서 공부는 고향을 지워내는 것이라 했다. 웬 공부를 이야기하다가 고향타령이냐고 황당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향을 지워내고 익숙한 것과 결별할 때, 비로소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황당한 말만은 아니다.

그 때의 고향이란 내가 알고 있는 세계, 나의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것들을 말한다. ,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것들과 사회적인 편견에 사로잡혀서는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정 공부를 하고자 한다면,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용감하게 들어가야 한다. 미지의 세계를 헤매는 것만으로도 강인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왜냐 하면, 미지의 세계도 어느 순간 일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장소를 없애며 어느 곳이든 새로움이 샘솟는 타향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공부란 미숙한 초보자에서 강인한 자로, 강인한 자에서 완벽한 자가 되어 가는 도정道程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공부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면, 과학 공부에 대해서도 어떤 특정 영역의 공부라 하여 기피하지도, 선을 긋고 삐딱하게 볼 필요도 없게 된다.

  

 

과학은 세상을 보고 궁금해 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과학 공부란 무엇일까? 그건 당연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세상을 보면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우리의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면서 그 너머에 어떤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상상했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신의 섭리를 이해하기도 했다. 인식이 미치지 못하는 곳을 이해하려다 보니, 자연히 종교의 초월론적인 해석에 의지하여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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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간절한 소망을 그린 'over the rainbow'. 그것 또한 무지개 너머를 그리던 심상이 담겨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게 천동설지동설이다.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엔 천동설로 세상을 해석했으며, 과학이 지배하던 시대엔 지동설로 세상을 해석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1564~1642)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말이 되었지만, ‘천동설로 세계를 해석하던 시대엔 해석의 틀을 완전히 바꾸자는 것이었기에 위험한 발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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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설'의 시대에 갈릴레이의 발언은 황당한 말로 들렸을 터다. 하지만 해석의 틀이 바뀌면 황당함은 당연함이 된다.

 

하지만 지금 보면 천동설은 황당무계한 궤변에 불과하며 갈릴레이의 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건 세상을 이해하는 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틀이 바뀌면 세상에 대한 이해도도 달라지며, 이해도가 달라지면 해석이 달라져 사물에 대한 판단 기준 또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건 곧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미래에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세상을 보고 판단하지만, 그 가운데 의심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의심하는 속에서 과학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발견이란 모두가 본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Discovery lies in seeing what everyone sees, but thinking what no one has thought). -앨버트 센트 디외르디란 말을 인용했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의 틀이 필요한데, 그런 해석의 틀이 되는 것이 과학이며 그런 과학은 일상을 보면서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려는 의지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과학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과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이야기 한 후에, 본격적으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대부분은 중립, 부정카드를 들었다.

 

Q: 과학으로 모든 것은 예측 가능한가? 그냥 하나의 설명일 뿐인가?”

A: (긍정카드를 든 경우) 혈혈단신으로 주원이만 들었다.

박주원: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난제도 다 풀린다고 생각한다.”

 

A: (중립카드를 든 경우)

오현세: “과학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밝혀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

김송라: “나중 일은 모르기 때문에 중립카드를 들었다

 

A: (부정카드를 든 경우)

김민석: “앞으로의 세상이 어찌될지 모르는데, 어찌 예측이 가능하나?”

박근호: “말이 안 된다. 인간이 어찌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복제 인간 등의 황당한 소릴 하니 당연히 부정적인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교수님도 예전엔 그 물질을 알기 위해서는 최소 단위까지 쪼개면 알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물질을 가장 작은 단위까지 쪼개어 보니 무려 90% 이상이 공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말을 해주셨다. 공간은 수많은 가능성은 될지언정, 그게 물질의 특성을 드러내는 원인은 될 수 없다. 그 말에 이어 과학엔 결정론과 불확정성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결정론은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있고, 속도를 알면 위치를 알 수 있다는 논의이고, 불확정성은 위치는 알지만 속도를 모른다. 오로지 확률분포만 알 뿐이라는 논의인데, 이런 문제는 아인슈타인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건 곧 과학이 절대불변의 진리일 수 없으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 또한 달라지는 것임을 이야기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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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은 '확실하다'는 생각에 균열을 가했고 '불확실함만이 확실하다'를 받아들이게 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박준규 선생님에게 들었던 과학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관련 글 보기)라는 말과 상통한다. ‘천동설로 세상을 보느냐, ‘지동설로 세상을 보느냐의 차이처럼, ‘고전역학으로 세상을 해석하느냐, ‘양자역학으로 해석하느냐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 과학의 해석체계가 달라지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솔직히 과학을 전공한 교수님에게 이와 같은 논쟁이 분분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과학자들은 정답을 찾으려 하고, 인문학자들은 정답을 없애려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편견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예를 제시하는 교수님을 보고 있으니, 두루두루 섭렵하여 학문의 영역을 종횡무진 누비던 조선시대 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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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학문과 학문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그래서 더욱 모르겠지만, 그게 이 특강의 핵심이다.  

 

 

과학은 어떤 경우에 악이 되는가?

 

과학이 하나의 체계이자 틀일뿐이라면, 어떤 기준에서 과학이 선이 되고, 악이 되는지 판단해보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서 교수님은 바로 질문을 던지셨다.

 

Q: 과학은 선일까요? 악일까요?”

A: (긍정카드를 든 경우)

이혜린: “과학을 통해 혜택을 받으니, 과학에는 긍정적이다.”

이건호: “과학은 약이다. 현실에 도움을 많이 준다.”

 

A: (부정카드를 든 경우)

박근호: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면서 진정으로 사회 발전을 견인하기보다 현실의 이득만을 탐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몇 십년이 지나면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오승환: 과학이 긍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있지만, 극단으로 치달으면 독이 된다.”

 

과학이 필요한 부분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선이 되고, 악이 될 수 있다. 그건 어찌 보면, ‘칼이 선이냐, 악이냐?’는 질문과 똑같은 것이다. 칼을 잘 쓰면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맛난 세상을 만들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인명을 살상하는 도구가 되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는 당연히 과학이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학은 선택이다 1 - 납에 대한 과학적 신념

 

아래에서 살펴볼 인물은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 과학은 세상을 이롭게 할 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걸 어떻게 이롭게 사용할 것인가 선택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운명은 갈라졌고 후세의 평가 또한 달라졌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D(dead) 사이의 C(choice).’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딱 이 말에 들어맞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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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 다룬 '선택 특집'. 그 근저는 사르트르의 말에서 시작됐다.

 

토머스 미즐리Thomas Midgley(1889~1944)는 살아 있을 당시에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과학자였다. 특허를 100개 이상 소유했으며, 프레온가스를 개발하여 인류의 진보를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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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즐리와 테트라에틸납.

 

그는 테트라에틸납(유연휘발유)이 자동차 엔진의 노킹현상knocking(엔진의 이상 점화 현상)을 크게 줄인다는 사실을 알고 테트라에틸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에틸납은 휘발유의 연소력을 훨씬 증가시켰기 때문에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그러나 에틸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납 중독에 걸려 죽어가자, 그는 에틸납이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며 납이 든 통에 손을 담그는 실험장면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가 살아 있을 당시엔 엄청난 사회적 지위와 부를 동시에 누렸다. 그의 과학적 확신은 세계를 점점 오염시켜 가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지만,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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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즐리 그는 과연 그의 발명품이 인류에게 축복이라 생각했을까? 저주라 생각했을까?

 

클레어 패터슨Clair Patterson(1922~1995) 지질학자였다. 그는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기 위해 방사성 기원 동위원소인 납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을 썼다. 그는 지구의 나이를 연구하는 도중 현대에 이르러 대기 중 납 농도가 비약적으로 높아진 사실을 알게 됐다. 납 농도의 증가가 유연휘발유의 사용 때문이라고 가설을 세웠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고민하던 끝에 그린란드는 눈이 내려 얼음이 생기면 층층이 쌓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과거의 납 농도를 알고 싶으면 그 해에 해당되는 얼음층의 납 농도를 조사하면 되는 것이다. 조사해 보니, 192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납이 거의 없었음을 밝혀낸다. 유연휘발유가 사용되면서 납 농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갔으며 그에 따라 환경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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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패터슨은 과학자적인 양심을 선택했다.

 

그런 사실을 밝혀낸 후로 그는 휘발유에 납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미국의 석유회사는 거대한 권력집단으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에게 지원해주던 연구자금을 끊는 것은 기본이고, 그가 재직하던 대학에 그를 해임하면 대학교에 기금을 주겠다고 전방위적인 압박을 펼쳐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에틸납의 유해성을 널리 알렸으며 그 덕에 1980년엔 납의 사용을 금하는 법이 제정되었고 1986년엔 모든 유연 휘발유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그는 자신의 학문적인 양심을 지킴으로 핍박 받고 힘겨운 생애를 보냈지만, 그 덕에 인류는 환경오염의 피해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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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휘발유란 말을 처음에 들었을 땐, '연기가 나지 않는 다는 뜻'에서 무연이라 쓴 줄만 알았다. 무식이 날뛰니 창피할 뿐^^;;

 

 

과학은 선택이다 2 - 자연을 위한 과학? 인간을 위한 과학?

 

맹그로브mangrove라고 아는가? 맹그로브는 아열대 지역의 하구 습지에 사는 산림의 일종으로, 홍수림紅樹林이나 해표림海漂林이라고도 한다. 맹그로브는 열대우림보다도 5배나 더 많은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탄소 저감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또한 맹그로브가 자라는 곳은 하천이나 바다에서 흘러온 유기물이 분해되는 곳으로 풍부한 영향분이 있어 다양한 생물종이 살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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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가치 없다고 느낀 것 속에서 가치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무너지면 우리 자신도 무너진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러한 자연환경은 별로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영향분이 많다면 그곳에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키우고 싶어 하며, 자연 상태로 있는 맹그로브보다 벌목하여 원하는 재료로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동남아 등지에선 목탄의 원료로 쓰기 위해 벌채를 하며, 적은 돈으로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블랙타이거(홍다리얼룩새우)를 양식한다. 그러니 차차 맹그로브가 파괴되어 열대습지가 사라지고 간척지가 황폐해진다. 맹그로브의 훼손은 간척지를 불모지로 만들어 그곳에 살던 뭇 생명들을 죽게 만들며, 그건 곧 생태계 전체의 교란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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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가 사는 생태계엔 다양한 종이 서식한다. 하지만 새우양식으로 인해 이 모든 게 파괴되었다.

 

주르겐 프리마베라Jurgenne Primavera는 수산학자다. 그녀는 1970년대에 블랙타이거 양식에 성공하여 새우양식업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적은 돈으로 새우를 먹을 수 있는 것도 그녀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는 윤리적인 먹거리를 찾아 블랙타이거를 반대하는 음식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함). 하지만 그녀는 새우양식장으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맹그로브를 보게 된다. 아마 부와 명예만을 좇는 사람이었다면, 자연이 파괴되든 말든 자신의 부와 명예를 지켜줄 새우양식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클레어 패터슨처럼 과학자적인 양심을 지켜야 할 때, 그 양심의 외침에 귀를 막지 않았다. 그래서 친환경적인 새우양식 방법을 연구했으며 은퇴하고 나서는 NGO 단체를 설립하여 맹그로브를 심는 일에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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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와 생태계를 지켜내기 위해 여생을 보내고 있는 주르겐 프리마베라.

 

 

과학은 선택이며, 맹신보다는 통찰이 필요하다

 

납의 유해성을 은폐하여 승승장구한 과학자와 그걸 밝혀내어 온갖 핍박을 받았던 과학자, 새우양식으로 떼돈을 벌기 위해 맹그로브를 파괴하던 과학자와 그 폐해를 알고 맹그로브의 씨를 뿌리는 과학자 중 우린 어떤 과학자가 될 것이며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과연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건 자신이 연구한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는 맹신이 자연을 파괴하며 삶을 왜곡시키는 대도 모른 체하느냐, 무언가 어긋났음을 인식하고 그걸 되돌릴 용기가 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이러한 예는 현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이나, ‘4대강 사업이 그런 예이기 때문이다. 단시간 내에 이득을 얻기 위해 자연에게 인위적인 변화를 가했다. 결국 자연의 훼손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어느 순간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고, 그 때에 이르러서야 후회한들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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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이 무가치하다고 느껴, 좀 더 가치 있는 땅으로 만들려 한다.

파괴는 싶지만, 천해자연의 보고인 갯벌의 복원엔 몇 십년, 몇 백년이 걸릴 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통찰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에 대한 접근이 있어야 하며, 과학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극단적인 과학 맹신 주의는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첫 과학사 특강을 듣고 난 후

 

1시간 30분이 훌쩍 흘렀다. 이번 강의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버무린 알찬 시간이었다. 첫 시간치고는 학생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전혀 모르는 주제이고, 어려운 내용인데도 들으려는 적극성이 있었다.

교수님도 단재학교에서 처음으로 특강을 하는 것이고, 우리도 이런 특강을 처음으로 듣는 것이기에 어색하여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도 있었는데, 그런 우려와는 달리 분위기가 좋았다. 과학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을 생각하고, 인생을 생각하며 삶의 자세를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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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북경에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뉴욕에서는 폭풍우가 된다는 나비효과는 나의 작은 행위가 결국 나의 인생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비효과는 과학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토머스 미즐리의 선택이 세계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친 것처럼 과학적인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교수님이 단재학생들에게 첫 강의에서 던진 화두는 그래서 당신은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거였다.

 

 

참고 사이트

 

토머스 미즐리: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07/24/20130724024508.html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107171037401001

맹그로브의 눈물: http://home.ebs.co.kr/hana/board/10/10025226/view/10003232189